2023년 1월 5일 방송된 MBN '특종세상‘에선 한국야구의 전설인 4할타자이자 프로 야구 감독으로 활약했던 백인천의 근황을 공개했답니다.
지난해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종적을 감췄다는 그를 찾기 위해 제작진은 그의 근황을 수소문했고 지인을 통해 천안에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에 백인천 감독이 있는 곳을 찾아간 제작진은 그의 근황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매일 건강하게 건강만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라고 밝은 얼굴로 근황을 전했습니다.
약 20년 전 은퇴한 그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팔다리가 굳어 혼자서는 휠체어를 끄는 것도 쉽지 않은 상태라고 방송은 전했답니다.
지금은 지인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는 그는 은퇴 후 사기를 당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고. 그는 “사기 치는 거 한두 사람이야? 사기 칠 줄 몰랐다. 사기꾼이라고 말하면서 오나?”라고 과거를 떠올렸답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일본 프로야구 팀에 활약했고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원년 일본에서 귀국해 선수 겸 감독으로 활약 4할 타율을 기록, 아직도 깨지지 않는 전설로 남았답니다. 이후 선수 은퇴 후에는 자신의 팀을 이끌며 감독으로 활약하며 큰 성과를 얻은 것은 물론 이승엽을 발굴하기도 했다고 방송은 전했답니다.
그러나 감독으로 활약하던 시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고. 그는 “뇌경색이 발병했다. 사람은 의지력만 가지면 다시 할 수가 있다고 ‘이거 아니면 난 죽어야 된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연습하니까 회복이 되더라”라고 당시 재활로 이겨냈다고. 이후 감독으로 복귀했지만 결국 2003년 야구계를 떠났고 이후 사업에 나섰지만 또다시 뇌졸중이 재발하는 상황을 맞았다고 파란만장한 인생스토리를 언급했답니다.
일 년 전 세 번째 뇌졸중이 발병한 그는 이날 병원을 찾아 건강을 체크했답니다.
검사결과 다행히 큰 이상은 없지만 근육이 많이 약해졌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그는 집에 돌아와 손자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할아버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현재 자녀들이 일본에 있다며 두 번의 이혼 후 가족과 연락을 끊고 지낸 지 오래라고 털어놨답니다.
또한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수양딸에게 배신당한 사연 역시 고백했다. 그는 “돈 관리를 모두 맡기곤 했다. 생활비를 다 카드로 하라 했으니까 그걸 자기 멋대로 썼답니다. 2년에 한 번 전세 계약하는데 그걸 자기 명의로 바꾼 거다”라며 지금은 종적을 감춘 수양딸에 배신당한 후 충격으로 세 번째 뇌졸중이 찾아 왔답니다.
참고로, 백인천 감독은 이날 모교 고등학교 야구 후배들과 만나 후배들이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며 뿌듯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답니다.
그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야구는 나의 생명이다. 야구 때문에 현재까지 이렇게 살고 있고 난 ‘야구 미치광이’다. 결국 후회는 없다”라고 여전한 야구사랑을 드러냈습니다.
- 프로필 이력 경력은?
나이 생년월일 1942년 9월 27일(80세)
고향 출신지 중화민국 장쑤성 우시 신장 174 cm 체중 77 kg
수비 위치 포수, 외야수 출신학교 서울 경동고등학교
프로 입단 년도 1962년 NPB
중화민국 장쑤성 우시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중화민국 장쑤 성 쑤저우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1945년 8.15 광복 후 귀국하여 그 후 미 군정 조선 수도 서울에서 성장하였다. 현역 야구 선수 시절 포지션은 포수 겸 외야수였다. 일본에서는 '하쿠진텐'으로 불렀답니다
40세 때였던 지난 1982년 감독 겸 선수로 뛰었던 MBC 청룡에서 기록한 4할 1푼 2리의 시즌 타율(80경기)은 현재까지 경신되지 않은 최고 타율 기록으로 남아 있답니다.
이후에 LG 트윈스,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을 역임하였고 1990년 LG 트윈스에서 첫 우승을 맛보았습니다.
롯데 자이언츠 감독 때는 성적이 매우 부진했고 감독일에 의욕이 없는듯 인터뷰때 골프치러 다닌 얘기등을 하면서 이미지가 매우 나빠졌답니다.
지난 1999년부터 2000년과 2006년에는 각각 SBS와 tvN에서 야구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는데 1999년 시즌 후 서정환 감독이 물러날 당시 후임 물망에 한때 거론됐지만, 당시 해설위원으로 활동한 SBS와의 전속계약 문제 때문에 좌절됐답니다.
지난 2007년에는 건강 악화로 해설을 잠시 중단했으나, 2008년부터 이광권 해설자의 후임으로 SBS 스포츠채널에서 3년 계약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관한 일본 프로 야구 중계를 맡았었다. 또, 이승엽을 시찰하기 위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춘계 캠프에 방문하기도 하였다. 2010년 6월부터 KBO 리그 은퇴선수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답니다.
- 그의 과거 인터뷰
백인천 한일유소년야구육성기금 이사장 "나는 건강중독자..뇌경색 극복 비결 책도 쓸 것" - 2012. 6. 24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원년인 그 해 4할대 타율(4할1푼2리)이 나왔다. 이 타율은 프로야구 31년째를 맞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전설의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19년간 선수로 뛴 일본 프로야구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수 위' 실력을 선보였던 백인천 선수 얘기다. 당시 국내 팬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환호는 오래 가지 않았다. 이혼, 슬럼프, 병마와의 오랜 싸움 등이 이어지며 그는 15년 이상 구장을 떠나 있어야 했답니다.
1996년 삼성 라이온즈 감독을 끝으로 야구 배트를 손에서 놨던 '영원한 4할 타자'가 다시 돌아왔다. 어린이 야구 육성 사업을 통해서다. 병마를 이겨내고 다시 활동에 나선 백인천 한일유소년야구육성기금 이사장(69)을 지난 22일 고양시 풍동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하얀 수염이 턱을 덮었지만 배트를 쥐고 웃음짓는 얼굴은 1980년대 그라운드를 달리던 그때 그대로였다.
백 이사장은 오는 8월10~12일 경기도 양평 VIP레저타운에서 (재)바보의나눔(이사장 염수정 주교)과 함께 여는 소년소녀가장 야구캠프 얘기부터 꺼냈다. "요즘 프로야구가 인기지만, 야구를 하고 싶어도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못하는 어린이가 의외로 많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어요."라고 전했답니다.
그는 대뜸 '중독론'으로 말을 이어갔다. "살아가면서 흔히 '중독'이란 말을 하는데, 나는 야구 중독자였습니다. 지금은 건강 중독자예요. 이 단계에 가면 무엇을 하든 자기가 하는 일에 성공합니다. 아이들에게 이런 걸 가르치고 싶어요."라고 언급했습니다.
프로야구 선수와 감독으로서 화려한 시절을 보낸 백 이사장은 1996년 삼성 라이온즈 감독때 찾아온 뇌경색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처음엔 왼쪽 팔다리가 모두 마비됐어요. 하지만 야구에서 '프로'를 보여줬으니 건강에서도 프로가 되자고 다짐했죠." 이젠 매일 집 근처 호수공원에서 사이클을 15㎞씩 타는 등 체력을 많이 회복했다고 했다빈다.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그는 지난해 10월 '백인천야구아카데미' 인터넷 카페를 열었다. 이어 최근 비영리 단체인 한일유소년야구육성기금을 설립했다. 기금에는 박영구 넥손 대표, 홍영천 스포츠클럽 서울레저 대표, 혜정 스님(재단법인 천국사 대표) 등 각계 인사들이 후원자로 참여하고 있다. 이 단체를 통해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 야구 지망생들을 돕는다는 계획이랍니다.
백 이사장에게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와 그가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당시 상황을 물었다. "1962년 19세 때입니다. 경동고를 졸업한 뒤 일본 프로야구에 도전했죠. 앞선 기술을 배우고 싶었어요." 그러나 당시의 비판은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다고 회상했다. " '한국 대표 선수가 돈 때문에 일본으로 팔려간다. 매국노다' 이런 식이었어요."라고 전했습니다.
그는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 땐 한국야구위원회에 일본 자료를 가져다 운영 노하우를 제공했다. "MBC 청룡 감독 겸 선수로 뛰면서 전지훈련을 가기 위해 공 200타(1타는 공 12개)와 배트 50자루를 신청했어요. '장사하려는 것 아니냐'며 결재를 안 해주는 거예요. 그 정도로 몰랐어요. 하하." 그는 요즘 자신의 야구인생을 담은 자서전도 쓰고 있다. 이르면 내달 출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자신의 뇌경색 극복기 등 15년에 걸친 건강관리 노하우를 담은 책도 펴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