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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고등학교 출신 고향 출생지 학력 대학

광명도 2025. 4. 26. 13:18

홍준표, 대선 낙선 딛고 한국당 초대 당대표로
-2017. 7. 3

홍준표 당대표 당선자는 당대표 재수다. 2011년 한나라당 당대표를 지낼 당시엔 같은 해 1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파문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서 유승민, 남경필, 원희룡 등 당시 최고위원들이 잇따라 사퇴, 홍 당선자도 7개월여만에 당대표 직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2015년에는 성완종리스트 사건으로 지사직을 잃을뻔 했다. 경남지사 시절이던 2015년 4월 자원개발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를 남긴 채 목숨을 끊었고, 리스트에는 홍 지사 등 정치권 인사 8명의 이름과 금품 액수로 추정되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받으면서 지사직 상실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일약 대선후보로 발돋움했다. 특유의 막말 정치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홍 당선자는 친박계를 겨냥해 "일부 '양박(양아치 친박근혜계)'들과 청와대 민정의 주도로 내 사건을 만들어 냈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선명성을 확보했다.

홍 당선자는 이후 "대한민국은 천하대란"이라며 "대란대치의 지혜로 돌파해야 한다"고 외치며 대선에 출마했다. 경선을 거쳐 초반 지리멸렬한 지지율을 딛고 24% 득표를 이뤘다. 이를 놓고 홍 후보의 개인기로 이끈 숫자라는 평가와 한국당 조직을 감안하면 아쉬운 성적이라는 평가가 공존한다. 어쨌든 이를 발판으로 당권에까지 이르렀다.

홍 당선자는 검사 출신으로 국회의원 4선에 경남도지사 2선을 거쳤다. 1993년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 시절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해 '6공의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씨 등 권력실세를 구속기소하며 '스타검사'가 됐다. 홍 지사를 모델로 한 SBS 드라마 '모래시계'가 큰 인기를 얻으며 '모래시계 검사' 타이틀도 얻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해 1996년 신한국당 소속으로 15대 총선에 당선돼 처음으로 국회의 문을 밟았다. 이후 18대까지 4선을 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당시 '대여(對與) 저격수'로 활약했다. 그러면서도 줄곧 비주류로 분류됐지만 2008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2011년에는 한나라당 대표 자리에 오르며 주류에 발을 들였답니다.

Δ1954년생(64세) Δ경남 창녕 Δ영남고 Δ고려대학교 행정학과 Δ청주지검 검사 Δ부산지검 울산지청 검사 Δ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 Δ광주지검 검사 Δ서울지검 검사 Δ법무부 특수법령과 검사 Δ15~18대 국회의원

홍준표 "아내와 '폭싹'처럼 50년…대통령 안돼도 실패한 인생 아냐"
-2025. 4. 26.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26일 "폭삭 속았수다의 양관식, 오애순 부부처럼 50년을 살았다"면서 "대통령이 안 되더라도 내 인생이 실패한 인생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홍 후보는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리고 이처럼 밝혔다.

홍 후보는 "1976년 10월 30일 아내를 처음 만난지 50여년이 흘렀다"며 "늘 처음 만난 그때의 설레임으로 50년을 오손도손 잘 살았다. 아내는 자기를 안 만났으면 나는 지금 서울역 지하도에서 노숙자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라고 가끔 놀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홍 후보는 "폭싹 속았수다의 양관식, 오애순 부부처럼 50년을 살았다"며 "제가 페미니즘보다 패밀리즘을 주창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짚었다.

홍 후보는 "대통령이 안 되더라도 내 인생이 실패한 인생은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내 나라를 완전히 새로운 나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마지막 내게 주어진 소명만큼은 꼭 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홍 후보를 비롯한 국민의힘 대선 2차 경선 후보자들은 이날 오후 5시 40분 2차 경선의 마지막 순서인 4자 토론에 나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