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안의 호남 아들' 인요한, 與 혁신위 수장으로
- 2023. 10. 23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23일 임명된 인요한(64) 연세대 의대 교수는 '대한민국 1호 특별귀화자'입니다.

'푸른 눈의 한국인'으로 잘 알려진 그의 가문은 4대째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교육·의료 활동을 펼쳐왔다. 구한말 미국에서 건너온 유진 벨 선교사가 외증조부다.


한편, 전남 순천 태생의 인 위원장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호남 영입 인재로 거론돼 왔다. 서울 서대문갑 출마가 유력하게 예상된답니다.

1959년 순천에서 태어난 인 위원장은 연세대 졸업 후 1987년 서양인 최초로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으며, 1991년부터 32년간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장으로 일해 왔다.

지난, 2011년 3월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가문의 교육·의료 분야 공헌을 인정받아 '특별귀화 1호' 대상자로 선정됐습니다.

인 위원장의 조부 윌리엄 린튼 선생은 1912년 선교사로 입국해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만드는 데 공헌했고, 3·1운동을 해외에 알리는 데 역할을 했다.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부친 휴 린튼 선생은 6·25전쟁 참전용사다. 인천상륙작전에 미국 해군 대위로 참전했고, 이후 순천기독치료소를 설립해 결핵 퇴치 활동에 앞장섰답니다.

인 위원장은 1997년 형과 함께 외증조부의 이름을 딴 유진벨재단을 설립, 대북 의료지원 활동을 펼쳐왔다. 무료 진료, 구급차 기증, 결핵퇴치사업 등을 위해 29차례 방북했다.

보수 정치권과의 인연은 2012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답니다.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박근혜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 합류했다. 당시 호남 지역 유세에 동행해 지지 연설하면서 '대한민국 여성 대통령론'을 펴 화제를 모았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원회에서 국민대통합 부위원장도 지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에도 교류는 계속됐다.

지난해 5월 취임식에 국민대표 20인 중 한 명으로 참석한 데 이어 올해는 참전용사 후손 자격으로 윤 대통령 내외의 한미동맹 70주년 특별전 관람에 동행하기도 했답니다.

최근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의 공부 모임 '국민 공감' 연사로 참여했던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에서 전라도 대통령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습니다.

2006년 펴낸 책 제목이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이라고 할 정도로 호남과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강하기로도 잘 알려져 있다. 평소에도 짙은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한답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 통역했던 이력도 있습니다.

부인 이지나 씨와 1남 2녀.

▲ 고향 출생지 - 전남 순천(64) ▲연세대 의대 ▲고려대 대학원 ▲연세대 의학박사 

'인요한 조부모' 학교 나온 조수진 "린튼家 한국 사랑은 대단"
- 2023. 11. 8

11월 8일 오후,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행사장에 도착하자 국민의힘 조수진 최고위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조 최고위원은 두손으로 인 위원장의 손을 잡고 환한 미소로 반겼다. 인 위원장은 조 최고위원의 바로 앞자리에 앉아 행사 중에도 소곤거리며 대화를 나눴다.

조 최고위원과 인 위원장의 인연은 1990년 조 최고위원이 졸업한 전주 기전여고에서 시작됐습니다.

기전여고 전신 기전학교는 1900년 미국 남장로교 최마태(Mattie Tate) 선교사가 세운 곳으로, 전북지역에서 3·1운동 등 독립운동을 주도한 여자 사학이다.

인 위원장의 조부 윌리엄 린튼은 1912년 남장로교 선교사로 입국,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독립운동과 의료·선교 활동을 했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에는 기전학교 제5대 교장을 맡았습니다.

윌리엄 린튼 교장 재임 시기 학교는 일제의 신사참배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폐교됐다가 해방 후 복교되기도 했다.

일제에 저항해 독립운동을 한 윌리엄 린튼은 결국 1940년 추방됐고, 해방 뒤 한국에 돌아와선 전주 기전여고에 있던 일본 신사 터에 화장실을 지어 일제에 응수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답니다.

인 위원장의 조모는 1949년 3월부터 1956년 3월까지 7년간 제7대 교장을 지냈다.

이 같은 인연으로 조 최고위원은 사석에서 인 위원장에게 "스승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스승님 할아버지, 할머니 안 계셨으면 고등학교 없었던 것 아니냐"고 농담도 던진다고 한답니다.

조 최고위원은 정치부 기자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을 필두로 한 '동교동계' 담당이었는데, 김 전 대통령의 치료를 맡는 등 동교동계 인사와 가까웠던 인 위원장과 기자-취재원 관계로 인연이 이어졌다.

조 최고위원은 앵커로 활동하던 2015년엔 인 위원장을 초청해 1시간 동안 '한국의 명문가, 린튼 가(家)' 특별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조 최고위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린튼 가문의 한국사랑은 대단한 것"이라며 인 위원장 조부와 부친 휴 린튼, 인 위원장 등 린튼가가 한국에 기여한 일화를 자세히 소개했답니다.

휴 린튼 선생은 6·25 전쟁 참전용사로, 인천상륙작전에 미국 해군 대위로 참전했다. 이후 순천기독치료소를 설립해 결핵 퇴치 활동에 앞장섰답니다.

휴 린튼 선생은 1984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졌고, 인 위원장은 부친의 사망 보상금으로 응급처치 시설을 갖춘 '한국형 앰뷸런스'를 제작해 1993년 순천소방서에 기증했습니다.

Posted by 광명도